오랜만에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웃었다.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황해를 보면서다. 방화 ‘황해’의 배경을 패러디한 개콘 ‘황해’는 조선족 특유의 억양과 어수룩함을 개그코드로 내세운 작품이다. 지난달 하순부터 시작해 이제 겨우 몇 꼭지를 선보인 셈인데 벌써 반응이 심상치 않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보이스 피싱’에 대한 내용이지만 조선족 사기꾼을 연기하는 개그맨들은 정작 사기꾼보다 사기를 당하고 살 사람처럼 어리하다. 신용카드에서 3,000만원이 인출됐다는 사기전화를 걸고 나서 카드는 교통카드 밖에 사용하지 않는 대답이 돌아오자 교통카드에서 3,000만원이 인출됐다는 식의 해맑은 답변을 한다. 이런 어설픈 상황들을 보며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잔꾀가 발각될 때마다 어눌한 발음으로 양념처럼 쳐대는 “그래서 마이 당황하셨어요?"란 대사는 한참 유행어로 뜨고 있는 중이다. 실수를 바로 잡으려 할수록 사정은 점점 난처해지는데, 아무리 해도 상대방이 잘 걸려들지 않자 답답해진 사기꾼은 “이건 사기가 아니라 보이스 피싱이라는 거다”라고 일러주기까지 한다.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조선족 캐릭터다.

시청자들은 대체로 개콘 ‘황해’에 대해 호의적이다. ‘대박이다’,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거니’란 찬사가 풍성하다. 평점 또한 아낌없이 후하다. 그런데 한편에서 매우 불편한 목소리가 들린다. 조선족을 비하하는 내용이 언짢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황해' 멤버들은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보이스 피싱 사기를 예방하기 위함일 뿐 비하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해명을 했다. "개그는 개그로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러나 조선족을 비하한다며 항의를 하고 있는 이들은 비하의도가 없었다는 해명을 성의 없는 변명으로 몰며 계속 못마땅한 표정들이다. 살림살이가 어려운 같은 동포를 이렇게 모욕해서야 되겠느냐는 탄식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잠깐 조선족에 대해서 짚어 보기로 하자. 지금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47만 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작년 말 기준으로 쳐서다. 그런데 조선족이란 용어 자체를 대한민국 사람들이 중국동포를 비하해서 붙인 이름으로 오해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 조선족이란 용어를 중국동포로 고쳐 불러야한다는 청원을 아고라에 올린 사람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족은 중국에 거주하는 56개 민족 가운데 하나인 중국 국적의 한민족들을 가리키는 정식 용어다. 즉 ‘조선족’은 중국동포를 비하하기 위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 조선족들에 의해서 유입된 중국어라는 이야기다.

유쾌하고 귀여운 조선족 캐릭터인 것을

중국의 공식적인 신분증명서류에서 조선족이라는 단어는 소수민족임을 나타내는 용어로 기재되어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부부 1자녀의 규제를 받지 않는 등 다양한 특혜를 누리고 있는 조선족들은 조선족이라는 호칭에 전혀 거부감 없이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조선족을 우리는 당연히 핏줄로 엮인 한민족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조선족들은 거의 모두가 중국인임을 확신하고 있다. 비즈니스로 한국인을 만나면 조선족들은 한국인의 핏줄임을 강조하곤 한다. 그러나 당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에 중국 사람이라는 대답을 망설이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조선족들이다.

개콘 '황해'는 앞으로도 보이스피싱에 중점을 둬 코너를 꾸릴 예정이라고 한다. 웃음을 주는 소재를 좀 더 우려내고 싶겠지만 중국에서 개콘을 시청하는 조선족들이 모욕감을 느끼며 격분하고 있다니 다양한 소재에 눈을 돌리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중국 시장을 무시할 수 없으니 말이다.